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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난치의 상상력
난치의 상상력 첨부이미지
구분
  성인
저자
  안희제
펴낸곳
  동녘
내용
  “나는 아프게 살아갈 것이다.”
                                              글_이혜란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와 나의 밤은 사납다. 두, 세 시간마다 몸을 긁는 아이. 옆에서 보초를 서면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간지러운 곳에 보습제를 바르고 아이스팩을 가져다 대고, 대신 살살 긁어주는 일뿐이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기에 피부 상태에 따라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써야 하는 질환이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 못한 '낙인'으로 찍히기 쉽다. 간지러워 하는 아이를 보며 나의 걱정은 아이의 10대, 20대에 가 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청춘은 어떻게 자신의 질병과 싸우고 화해하며 자신의 하루를 지켜가고 있을까.

  진보 장애인 언론매체인 <비마이너>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 안희제는 ‘아픈 청춘’이다. 그는 수능을 준비하던 해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몸 속 면역계가 이상이 없는 세포를 공격하여 과잉 면역반응을 보이는 병. 소화기 전체에 염증이 계속 생겨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법적으로 장애인 등록을 받지 못하고 겉으로 보기에 아파보이지 않아  저자는 매번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고 편의를 구해야 한다. 약속과 수업을 취소하고, 일하고 놀다 갑자기 쓰러지는 일은 다반사다. 그는 소설가 한강의 표현을 빌려 자신의 통증을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과도 같다고 말한다.

  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장애의 대상은 신체에 가해진 시술과 필요한 보장구를 착용한 이들에게 해당한다. 관리 약물을 복용하며 몸을 통제하는 저자는 어디에 속할까. “나는 장애인인가, 비장애인인가, 그 사이에 뭔가가 있는가, 왜 나는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가.” 안희제는 자신과 같이 난치병을 앓고 있고 있는 사람들, 장애를 겪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차별과 불편을 겪는지 면밀히 살핀다.

  장애의 중증 여부 심사는 대상자가 팔을 움직일 수 있는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등. 대개의 경우, 집 안에서 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를 여부를 따진다. 지역 사회에서의 타인들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장소로의 이동 가능 여부, 독립적으로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등의 사회적인 활동 영역은 묻지 않는다.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장애인들은 교수가 수업용 자료를 형평성이나 저작권을 이유로 미리 받지 못하고 영어수업에 필요한 속기사도 만나기 어렵다. 직장에서는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고용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흔하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법 조항까지 있다.

  삼성은 기술 홍보를 위해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를 제작했다. 시각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저자는 기술이 장애를 마치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에서는 시각장애인 옆에서 봉사하는 학생이 사진구도를 잡아주고 조언을 해준다. 그러면 장애인은 그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기뻐한다. 저자는 영화에서 장애인의 주체성은 보이지 않고 시각장애인이 사진 촬영과 같은 일을 성공하면 ‘정상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고 영화를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바람직한’ 욕망을 요구하는 게 아닌지 질문한다.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실린 카드 형식의 뉴스는 음성을 지원한다. 하지만 사진이 담긴 카드에는 텍스트가 없기에 시각장애인은 무슨 사진이 실려 있는지 알 수 없다. 뉴스카드를 접하는 시각장애인이 이미지까지도 인식하길 바라는 저자는 언론사에 사진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제공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한다. "텍스트를 내놓으세요!"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가 청각으로 번역되는 '감각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픈 청년’ 안희제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살기 편한 세상을 상상한다. 이 책은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려는 희망 찾기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담담히 크론병 환자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며, "나는 앞으로 아프게 살아갈 것이라고" 선포한다. 저자는 장애인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길러진 깊은 사유로, 질병을 가진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우리 사회의 차별의 민낯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가족을 '몸의 경험을 함께 하는 사람들'로 새롭게 정의해 보면 어떨까. 저자는 아픔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돌보는 아픈 이들의 공동체를 꿈꾸고 상상한다. 징징거리는 이들이 많아져 서로 의존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도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니 나도 '아토피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3년 동안 밤마다 보초를 서왔기에 나도 제법 할 말이 있다. 아이의 고통을 제대로 헤아리는 것은 힘들지만, 아이의 피부상태, 음식과 환경에 따른 간지러움 정도, 아이의 기분, 치료과정을 기록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너무나 간지러운 살갗'. 그 아픈 몸의 언어를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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