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 그림책전 <끝에서, 시작으로>
이른 봄, 씨앗을 파종할 시기도 아닌데 땅 위에 새싹이 돋아납니다. 지난해 저절로 떨어진 씨앗이 혹독한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고 싹을 틔운 것이겠지요.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새싹이 돋는 것은 꽃이 남긴 씨앗의 또 다른 약속을 의미합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그 끝의 경계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시작이 있기에 인간의 삶도, 예술도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이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환영의 그림책 원화전시 ‘끝에서, 시작으로’는 이야기의 끝, 그 경계에서 희망의 시작을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빼떼기는 순진이네 가족과 이웃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이었고, 가난과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지만, 소년의 강냉이는 폐허 속에서 또다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여물어 갈 것입니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은 어린 감자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지만, 어미닭이 그랬던 것처럼 감자 또한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작품들은 각각의 서사를 전개해나가면서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여운을 남겨둡니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작품들이 들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시를 통해 김환영 작가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상상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싹 트기를 기대합니다.
*전시 그림책 : ≪빼떼기≫, ≪강냉이≫, ≪따뜻해≫, ≪나비를 잡는 아버지≫